순이 이야기
글 수 668
보탑사를 간다고 길상사를 떠나
사석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가
커피 한잔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석 삼거리는 진천가는 길 천안가는 도로와 청주가는 도로로 갈라지는 곳입니다.
하여간 모르면 용감하다고 여기서부터 보탑사를 걸어가겠다고
걷기 시작하다가 사충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조 4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청주와 진천을 함락하고
이지경이란 사람이 자칭 진천 현감이 되어 괴롭힐 때에
김천주란 사람이 동생 과 아들과 조카와 함께 의거를 일으켜
쇠스랑과 괭이를 들고
습격했다가 전사한 것을 기리는 문이라고 하네요.
이것이 알려지자 국왕이 이렇게 사충문을 내렸다고 하네요.
이인좌의 난은 결국 평정되었다고 하구요.
쇠스랑으로 싸웠다고 쇠스랑 충신이라고 한다고도 합니다.
양희은씨의 싸움터에 죄인이 한사람도 없네 라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왜 이 김천주와 그의 동생과 아들과 조카는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요.
졸지에 남편과 시숙과 조카와 아들을 잃은 아녀자의 슬픔도 떠올랐구요.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아닌 그저 왕에게 충성하는 것과 불충때문에
변변한 무기도 없이 목숨을 담보로 싸워야 했던 선량한 백성
이 역시 이념의 희생자일 뿐.
이념이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하겠습니까.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초개 같이 스러져간 네 충신의 용감한 넋앞에
마음 조아려 고개 숙입니다.

S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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